“발음을 정확히 하려는데 목소리가 갈라져요.”
“ㅅ ㅈ ㅊ이 연달아 나오면 다 뭉쳐요.”
“발성을 쓸 때와 안 쓸 때 차이를 모르겠어요.”
— 수업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발음이 안 좋다는 말을 들으면 대부분 이렇게 대응합니다. 자음을 더 세게, 더 정확하게. ㅅ에 공기를 더 쏟고, ㅋ을 더 터뜨리고, ㅌ을 더 밀어냅니다.
그런데 그럴수록 이상해집니다. 발음은 선명해진 것 같은데 목소리가 얇아지고, 문장이 길어지면 오히려 다 뭉칩니다.
자음은 소리가 아니라 “점”입니다
자음을 소리를 만드는 재료라고 생각하면 이런 일이 벌어집니다. 자음마다 공기를 새로 준비하고, 혀에 힘을 주고, 그때마다 발성이 한 번씩 끊깁니다.
자음은 전체 소리 중에 점이에요. 혀가 그냥 점. 발성은 따로 나는 거예요. 영향을 미치지 않아요.
즉 자음은 소리를 만드는 게 아니라 소리에 표시를 남기는 것입니다. 혀가 닿았다가 바로 떨어지는 터치. 소리를 실어 나르는 건 자음이 아니라 발성입니다.
그래서 지시는 이렇게 바뀝니다. “자음을 더 정확하게” 가 아니라, “자음을 덜 하고 발성을 유지하라.”
ㅅ ㅈ ㅊ이 특히 위험한 이유
마찰음과 파찰음은 원래 공기를 쓰는 소리입니다. 그래서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가장 쉽게 붙습니다. 문제는 이 소리들이 문장에서 연달아 나온다는 점입니다.
한 글자씩 천천히 할 때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속도가 붙으면, 매 글자마다 공기를 새로 만들어 쓰던 습관이 겹치면서 소리가 전부 뭉쳐버립니다. 본인은 열심히 발음한 건데 듣는 쪽에서는 뭉개져 들립니다.
시옷 느낌이 하나도 안 들어가게, 차이가 거의 안 느껴질 정도로 터치를 정말 조금만.
덜 해도 들립니다. 정확히 말하면, 덜 해야 들립니다. 발성이 유지되고 있으면 자음은 아주 살짝만 스쳐도 전달됩니다.
그러면 소리는 어디서 만들어지나
세 가지가 각각 다른 역할을 합니다. 이걸 구분하지 못하면 계속 엉뚱한 곳을 고치게 됩니다.
- 1음도 — 소리의 높낮이. 성대가 결정합니다.
- 2조음점 — 혀가 닿는 자리. 혀가 결정합니다.
- 3울림점 — 공기가 머무는 자리. 공기가 결정합니다.
발음이 안 좋다고 느낄 때 대부분 조음점만 건드립니다. 하지만 소리의 실체를 만드는 건 울림점입니다. 조음점에 모든 신경을 쓰면 공기가 전부 입 앞쪽으로 빠져나가고, 성대는 울리지 않습니다.
공기는 세게 밀어도 똑같이 나갑니다
“더 크게, 더 세게”가 답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성대가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으면, 공기는 일정한 속도로 흐릅니다. 물병을 기울일 때 아무리 힘을 줘도 물이 나오는 속도가 정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세게 밀어서 달라지는 건 소리가 아니라 긴장입니다. 목에 힘이 들어가고, 혀가 두꺼워지고, 성대 앞쪽만 촘촘히 붙습니다. 그러면 공기가 지나갈 틈이 줄어듭니다.
이 소리의 특징은 힘을 다 뺀 소리예요. 앞쪽에도 안 들어가고 뒤에도 안 들어가고, 그냥 힘을 풀면 성대 모양 그대로 공기가 통과해서 울린다.
톤이 낮은 게 아니라 갈라지는 것입니다
낮은 목소리를 좋아해서 일부러 깔고 쓰는 분이 많습니다. 그런데 자기 음폭의 아래쪽에서만 말하면, 소리를 낼 여유 구간이 없습니다. 조금만 더 내려가면 바로 갈라집니다.
기본 소리를 가운데 두고 위아래로 움직이는 게 정상입니다. 아래에서 시작하면 갈라지는 소리 위주로 쓸 수밖에 없습니다.
내 목소리를 바꾸는 게 아닙니다
발성을 배운다고 하면 겁을 냅니다. 내 목소리가 사라지는 건 아닐까, 남의 목소리로 말하게 되는 건 아닐까.
아닙니다. 대부분의 경우 좋은 소리는 이미 그 사람 안에 있습니다. 문제는 좋은 구간을 벗어나 쓰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내려가는 것입니다.
지금 잘 쓰고 있는 목소리가 있어요. 그 목소리에서 쓰지 말아야 할 영역까지 내려오는 게 문제인 거예요.
그러니까 훈련의 목적은 교체가 아니라 경계 인식입니다. 여기까지는 내 소리, 여기부터는 아니다. 그 선이 감각으로 잡히면 저절로 안 쓰게 됩니다.
순서를 지키면 됩니다
이 순서를 건너뛰고 처음부터 빠르게 하면, 앞의 두 단계가 무너진 채로 굳습니다. 정확하게가 항상 1번입니다.
그리고 하나 더. 잘 안 될 때 계속 되돌아보고 고민하면 그 부담이 그대로 쌓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반복하는 편이 낫습니다. 이 기초 하나만 만들어 놓으면 그다음부터는 무엇이든 얹을 수 있습니다.
전 대구MBC 아나운서. 연세대 언어병리학 석사. 아이돌·성우·배우들이 찾는 스피치 코치로, 3,000명 이상을 코칭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