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습할 땐 되는데 글만 보면 다시 굳어요.”
“천천히 또박또박 읽으려니까 더 어색해집니다.”
“발음을 신경 쓰면 목소리가 무너져요.”
글자를 보고 소리를 만드는 것과, 아는 소리를 꺼내는 것은 다른 일입니다.
수업에서 자주 보는 장면이 있습니다. 방금 전까지 잘 나오던 소리가, 지문을 펼치는 순간 사라집니다. 글자를 하나씩 밟아가며 읽기 시작하면 목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건 실력 문제가 아니라 경로 문제입니다.
읽는 것과 뱉는 것은 다릅니다
글자를 보고 소리를 만들면, 매 글자마다 “이걸 어떻게 발음하지”라는 판단이 들어갑니다. 판단이 들어가면 그 자리마다 힘이 붙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 소리들은 이미 알고 있습니다. 평생 써온 말이니까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읽어 내려간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기억한 소리를 그냥 뱉으세요.
제가 한 번 읽어드리면 그 소리를 귀에 담았다가, 느낌으로 밀어냅니다. 본인은 읽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기억한 소리를 재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힘이 안 들어갑니다.
발성 위치 하나만 기억하고 쭉 밀어보세요. 발음은 이미 됩니다. 소리 내서 읽으려고 하는 순간부터 힘이 들어갑니다.
발성에 발음을 맞춰야 합니다
순서를 헷갈리면 계속 무너집니다. 많은 분들이 발음을 정확하게 하려고 발성을 바꿉니다. ㅅ을 또박또박 내려고 앞쪽에 힘을 주고, 받침을 살리려고 턱을 내립니다.
발성에 발음을 맞춰야지, 발음에 발성을 맞추면 안 됩니다.
발성을 고정해 두고 그 위에서 반복하면, 발음은 알아서 힘이 풀리면서 속도가 붙습니다. 반대로 하면 문장마다 소리가 달라집니다.
천천히 하는 게 늘 옳지는 않습니다
정확하게 하려고 아주 느리게 연습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나치게 느리면 오히려 문제가 생깁니다.
그래서 어느 단계부터는 빠르게 해서 군더더기를 없앱니다. 빠르게 하면 쓸데없는 움직임을 할 시간이 없습니다. 실제로 한 번 하고 두 번째에 속도를 올리면 발음이 저절로 붙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령이 하나 있습니다. 첫소리를 일부러 길게 내서 울림 위치를 먼저 맞춰 놓고 시작하는 겁니다. 시작점이 맞으면 뒤가 따라옵니다.
편한 목소리가 좋은 목소리는 아닙니다
“이 톤이 제일 편해요”라고 하실 때, 그 톤은 대개 오래 써서 익숙한 톤입니다. 편한 것과 몸에 맞는 것은 다릅니다.
실제로 성대가 편하게 울리는 톤은 본인 기준에 살짝 높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어색합니다. 그 어색함은 틀렸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그 톤을 계속 쓰다 보면 그게 내 톤이 됩니다. 지금 어색한 이유는 아직 덜 써봐서입니다.
지금 불편한 게 정상입니다
배운 것을 일상에서 유지하려고 하면 반드시 이런 구간이 옵니다. 말하면서 소리를 신경 써야 하니 불편하고, 한 번 생각을 거쳐 나오니 말이 느려집니다.
많은 분들이 이 지점에서 “역시 안 되나 보다” 하고 원래대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건 실패가 아니라 바뀌는 중에 반드시 지나는 구간입니다.
편안한 상황에서 놓치지 않고 계속 쓰다 보면, 그때부터 이게 내 목소리가 됩니다.
드릴은 드릴을 잘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하나. “가기구게고” 같은 연습을 실제로 쓸 일은 없습니다. 그럼 왜 할까요?
그 느낌을 기억할 수 있느냐 없느냐 — 그것 하나 때문입니다. 드릴을 잘하게 되는 게 목표가 아니라, 드릴에서 만난 감각을 말할 때 꺼낼 수 있게 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러니 연습 횟수를 세는 것보다, 오늘 그 느낌을 한 번이라도 정확히 만났는지를 확인하는 편이 낫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지문을 외우라는 뜻인가요?
외우라는 게 아닙니다. 글자를 하나씩 판독하며 소리를 만들지 말고, 이미 알고 있는 말소리를 꺼내 쓰라는 뜻입니다. 한 번 들은 뒤 그 소리를 재생하듯 읽으면 힘이 덜 들어갑니다.
Q. 빠르게 하면 발음이 뭉개지지 않나요?
정확도를 먼저 만든 다음에 속도를 올리는 순서라면 뭉개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필요한 입·혀 움직임이 사라져 더 또렷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다만 정확도가 없는 상태에서 속도부터 올리면 그대로 굳습니다.
Q. 새 톤이 어색한데 계속 써도 되나요?
어색함은 익숙하지 않아서 생기는 감각이지 무리하고 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목이 아프거나 소리가 갈라진다면 멈춰야 하지만, 단지 낯설게 느껴지는 정도라면 계속 쓰는 편이 빠릅니다.
이러서라(ERUSEORA) 대표. 언어재활사(언어병리학 석사)·전 대구MBC 아나운서. 발음·발성·비유창성을 임상적으로 교정하며, 아이돌·성우·배우들이 찾는 스피치 코치로 3,000명 이상을 코칭했습니다. 저서 『하루 10분, 말막힘이 사라지는 이러서라의 발성 루틴』 『배우들이 배우는 시크릿 발음 비법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