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영혼이 없다는 소리를 들어요.”
“대화가 자꾸 끊기고 상대가 짧게 답합니다.”
“연습은 하는데 실제 대화에서는 하나도 안 됩니다.”
— 말투를 고치려 해본 분들이 하는 말입니다.
말투를 고치려는 분들은 억양부터 손봅니다. 끝을 올릴지 내릴지, 어디서 쉴지, 어느 단어를 강조할지요.
그런데 수업에서 제일 자주 짚는 건 억양이 아닙니다. 의도가 소리에 실렸는가입니다.
“오늘 뭐 할래?”에 기대감이 1도 없을 때
수업에서 짧은 질문들을 연습시킬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지냈어?”, “주말에 뭐 했어?”, “오늘 뭐 할래?” 같은 것들이요.
그런데 이렇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안 궁금한데 물어보는 것 같다.
“오늘 뭐 할래”에
오늘 뭐 하는 것에 대한
기대감이 1도 없습니다.
발음이 틀린 게 아닙니다. 억양도 그럭저럭 맞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왜 하는지가 소리에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당연합니다. 우리가 궁금하면 호흡부터 달라집니다. “응?” 하고 숨이 살짝 들어갑니다. 그게 없으면 같은 문장이라도 “물어는 보는데 답은 안 궁금한” 소리가 됩니다.
상대 입장에서 한 번 뒤집어 보세요
수업에서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집에 가서 ‘오늘 뭐 먹어?’ 라고 물어보면, 거기에 기대감이 있나요, 없나요?”
그리고 뒤집습니다. “반대로 가족이 ‘오늘 뭐 먹고 싶어?’ 라고 물어볼 때 — 그 마음은 어떨 것 같아요?“
답은 금방 나옵니다. “어? 얘는 뭐가 먹고 싶을까?” 하고 궁금해서 묻는 겁니다. 하나도 안 궁금한데 물어보지는 않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말을 하는 모든 순간이 어떤 에너지를 갖고 있습니다. 질문에는 궁금함이, 걱정하는 말에는 걱정이, 반가운 인사에는 반가움이요. 그게 빠지면 문장은 맞는데 전달이 안 됩니다.
말이 느려지는 것도 같은 문제입니다
의도가 빠지면 소리에서 세 가지가 같이 떨어집니다.
① 소리의 무게가 뒤로 갑니다. “그게 아니라요…”, “제가 그래서요…” 처럼 앞이 가볍고 뒤가 늘어집니다.
② 속도가 느려집니다. 에너지가 느리니 말도 느려집니다.
③ 음이 떨어집니다. 문장마다 끝이 처집니다.
그래서 듣는 사람에게는 졸린 듯한 느낌으로 갑니다. 심지어 눈도 반쯤 뜨게 됩니다. 소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상태 전체가 그쪽으로 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이 상태로는 발성 연습을 아무리 해도 적용이 안 됩니다. 연습할 때 배운 소리를 알고 있어도, 실제로 말할 때 에너지가 처져 있으면 그 소리가 안 나옵니다.
기술보다 먼저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질문부터 합니다. “내 인생에서 내가 가장 빛났던 순간, 언제예요?”
어떤 분은 초등학생 시절을 꼽았습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밖에서 놀다 들어오던 때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면 많이 달라요?” 많이 다르다고 하셨습니다.
그럼 그때의 나를
꺼낼 필요가 있겠네요.
그날 연습은 이렇게 했습니다. “지금 내 기분은 초등학생이야. 밖에서 놀다 막 집에 온, 친구들을 만났을 때의 그 느낌. 목소리는 배운 대로.”
기분은 그때의 나, 목소리는 배운 대로. 두 축을 분리해서 동시에 돌립니다. “느낌을 넣으세요”는 막연한데, “지금 내 기분은 ○○이야” 는 바로 실행됩니다.
집에서 하는 연습 — 다섯 단계
세 번째가 중요합니다. 감정이 그냥 생기지는 않습니다. 수업에서도 감정이 안 나오면 제가 상황을 지어서 드립니다 — “친구랑 있는데 누가 와서 말 시키고 갔어요. 그 친구한테 물어보는 거예요. ‘누구야.’” 그러면 바로 나옵니다.
그리고 표정과 웃음도 같이 넣으세요. 얼굴이 움직이면 소리가 따라옵니다. 소리만 따로 만들려 하면 잘 안 됩니다.
배려가 말을 막기도 합니다
한 가지 덧붙이겠습니다. 말이 잘 안 나오는 분들 중에 상대를 너무 배려해서 그런 경우가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불편하지 않을까”, “내가 맞춰주는 게 낫지 않을까” — 이런 생각을 많이 하면 머릿속에서만 돌고 말이 안 나옵니다. 결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은 더 답답해집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나눠 드립니다. 내용은 나 중심으로, 말투는 상대 중심으로.
무엇을 원하는지는 명확하게 말하되, 말하는 방식은 배려하면 됩니다. “가능할까요?”에 대해 “지금으로서는 가능할 것 같고, 변경사항이 있으면 언제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처럼요. 내용은 분명하고 말투는 정중합니다.
둘을 섞으면 배려하느라 내용이 사라집니다. 그러면 상대도 답답하고 대화가 길어집니다.
같은 증상, 다른 원인
“말에 영혼이 없다”는 같은 말에 원인이 갈립니다.
① 의도가 소리에 안 실린 경우 — 문장은 맞는데 왜 하는 말인지가 없습니다.
② 에너지 자체가 처져 있는 경우 — 소리·속도·음이 같이 떨어집니다.
③ 배려하느라 내용이 사라진 경우 — 말투는 좋은데 뭘 원하는지 모르겠습니다.
④ 발성이 안 받쳐주는 경우 — 의도는 있는데 소리가 안 실립니다.
①②③은 기술이 아니라 상태의 문제이고 ④는 발성 훈련입니다. 그리고 ②가 깔려 있으면 ④를 아무리 연습해도 실제 대화로 안 넘어옵니다. 순서가 있습니다.
비슷한 과정을 거친 분의 기록
환자에게 중요한 정보를 전해야 하는 일을 하시는 분이 계셨습니다. 마음은 분명히 따뜻하게 전해졌는데, 말끝 억양이 아이처럼 올라가고 서술어가 정리되지 않아 가벼운 대화처럼 들렸습니다.
열 번의 수업 동안 세 가지만 잡았습니다. 첫소리를 늘리지 않기, 말끝을 올리지 않고 정리하기, 호흡이 막히는 문장을 골라 반복하기. 6회차에 변화가 왔고, 그때부터 감정을 담는 연습으로 넘어갔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원래 차분한 성격인데 억지로 밝게 해야 하나요?
밝게 하라는 게 아닙니다. 그 말을 하는 이유를 소리에 넣으라는 것입니다. 차분한 사람이 진짜 궁금해서 물으면 차분하게 궁금한 소리가 납니다. 그건 과장이 아니라 진심이 들리는 것입니다.
Q. 연습할 때는 되는데 실제 대화에서는 안 됩니다.
대화 직전에 에너지가 이미 처져 있어서인 경우가 많습니다. 수업에서도 감정 질답으로 에너지를 올려놓은 다음에 낭독으로 갑니다. 순서를 바꾸면 안 따라옵니다. 중요한 자리 전에 짧게라도 기분을 올려놓는 시간을 두세요.
Q. 이건 연습으로 되는 건가요, 성격 문제인가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이 부분은 코치가 대신 해줄 수 없습니다. 소리 내는 법은 알려드릴 수 있지만, 말할 때 무엇을 느끼는지는 본인이 넣어야 합니다. 그래서 거울을 보며 “나 괜찮다”고 말해보라는 과제를 드리기도 합니다. 이상하게 들리지만, 그 에너지가 있어야 나머지가 바뀝니다.
그렇다면 내 경우는 어떨까요
의도가 소리에 안 실린 것일 수도, 에너지가 처져 있는 것일 수도, 배려하느라 내용이 사라진 것일 수도, 발성이 안 받쳐주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앞의 셋은 기술이 아니라 상태이고, 마지막 하나는 훈련입니다. 그리고 억양만 고쳐서 해결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습니다. 내 말이 어느 쪽인지는 한 번 들어봐야 알 수 있습니다.
대구MBC 아나운서 출신. 연세대학교 대학원 언어병리학 석사. 국가공인 언어재활사이자 (사)한국언어재활사협회 정회원입니다. 3,000명 이상을 코칭했고, 저서로 『하루 10분, 말막힘이 사라지는 이러서라의 발성 루틴』, 『배우들이 배우는 시크릿 발음 비법서』가 있습니다. 아나운서 경험과 언어병리학을 바탕으로 발음·발성·말막힘을 분석합니다. ‘말 잘하는 방법’을 먼저 가르치기보다, 사람마다 말이 달라지는 이유를 듣고 어디에서 문제가 시작되는지를 찾는 것에서 코칭을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