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말했는데 형식적으로 들린대요.”
“제 말에 힘이 없다는 얘기를 들어요.”
“배에 힘을 줘도 목소리가 안 실려요.”
— 수업에서 자주 듣는 이야기입니다.
같은 문장을 두 사람이 말하면 한 명은 진심으로 들리고 한 명은 그냥 정보로 들립니다. 대본도 같고 내용도 같은데 말입니다. 대부분 이걸 태도나 마음의 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리 쪽에서 보면 꽤 물리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호흡을 두 가지 깊이로 씁니다
별거 아닌 말을 할 때는 얕은 호흡을 씁니다. 가볍게 오가는 대화, 형식적인 인사, 굳이 힘을 실을 필요가 없는 말들입니다. 재미있는 사실 하나는, 거짓말도 대개 이 얕은 호흡에서 나옵니다.
반대로 정말 전하고 싶은 말을 할 때는 다른 호흡이 나옵니다. 감정이 실린 톤이 나오기 시작하는데, 그 호흡은 생각보다 아래에 있습니다. 그걸 끌어올려서 소리에 실었을 때 듣는 사람이 “아, 이 사람 진짜구나” 하고 믿게 됩니다.
진심은 태도가 아니라 깊이로 전달됩니다.
깊은 호흡을 끌어올려 쓴 소리만 진짜로 들립니다.
그런데 발음에서 끊기면 끌어올릴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여기서 생깁니다. 깊은 호흡을 끌어올리려면 말이 끊기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분이 또박또박 발음하려다 매 음절에서 호흡을 잘라 씁니다. 자르고 새로 쓰고, 자르고 새로 쓰고.
그러면 아래에 있는 호흡까지 내려갈 틈이 없습니다. 얕은 호흡만 반복해서 쓰게 됩니다. 본인은 진심으로 말했는데, 소리는 계속 표면에서만 나오는 겁니다. 마음의 문제가 아니라 경로가 끊긴 문제입니다.
특히 잘 끊기는 자리가 있습니다. 받침과 조사 사이입니다. “시간 / 이죠”처럼 받침에서 울림을 한 번 멈추고 다시 시작하면 그 자리에서 호흡이 리셋됩니다. “시간이죠”로 넘어가야 앞의 울림이 뒤까지 이어집니다.
발음을 흐름 위에 얹으세요
그래서 순서를 바꿔야 합니다. 발음을 정확히 한 다음 목소리를 얹는 게 아니라, 흐름이 먼저 있고 발음이 그 위에 얹히는 것입니다.
연습할 때 이 문장 하나만 가지고 가세요. “흐름을 방해하는 발음을 없애고, 흐름 안에서 발음한다.” 또렷하게 들리는 것보다 끊기지 않는 것이 먼저입니다.
- 1받침을 세게 닫지 않습니다. 받침에 힘을 주는 순간 울림이 거기서 멈춥니다. 받침은 닫는 자리가 아니라 다음 음절로 넘어가는 다리입니다.
- 2ㄹ 받침을 너무 열심히 하지 않습니다. “할 때가”, “길고양이” 같은 자리에서 ㄹ을 또렷하게 내려 할수록 끊깁니다.
- 3ㅅ은 따로 만들지 않습니다. 속도가 붙으면 ㅅ은 알아서 들립니다. 일부러 마찰을 만들면 그 자리에서 성대가 멈춥니다.
참고로 말이 느려지는 것도 신호입니다. “끝까지 정확하게 발음해야지” 하다 보면 속도가 떨어지는데, 그건 여유가 아니라 어딘가에 힘이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배에 힘을 주지 마세요
여기서 많이들 오해하는 게 있습니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면 배에 힘을 줘야 한다고 배웁니다. 그런데 배에서 뭔가를 붙잡는다고 소리가 잘 나오지는 않습니다.
필요한 건 공기압을 끌어올려 내보내는 느낌이지, 복부를 단단히 잡는 게 아닙니다. 둘은 다른 동작입니다. 배를 잡으면 오히려 몸 전체가 긴장해서 울림이 줄어듭니다.
특히 마이크가 있는 상황이라면 더 그렇습니다. 마이크를 믿으세요. 처음부터 끝까지 힘을 주고 말하면 본인이 먼저 지칩니다. 중요한 대목에만 에너지를 넣고 나머지는 편안하게, 그렇게 오가는 게 맞습니다. “배에 힘 줘야 하는데”라는 생각 자체를 내려놓으셔도 됩니다.
발성이 또렷하게 들려야 한다는 강박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짝 안 들려도 괜찮습니다. 다만 속삭이는 것과는 다릅니다. 울림은 유지하되 크기를 줄이는 것입니다.
어디서 끊을지는 감정이 정합니다
끊어 읽기를 연습하면 “그럼 항상 여기서 끊어야 하나요?”라고 묻습니다. 아닙니다. 어디서 끊을지는 말하는 사람의 감정과 강조하고 싶은 것이 정합니다. 하나하나 강조하고 싶으면 다 나뉘고, 한 번에 흘려보내고 싶으면 한 호흡으로 갑니다.
그런데도 끊어서 연습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완 쪽으로 소리를 내면 말이 뭉치지 않고, 언제든 원하는 자리에서 끊어 들어갈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힘을 주고 말하면 이완이 안 되고 모든 말이 뭉쳐서 나옵니다. 연습의 목적은 끊는 게 아니라 선택권을 갖는 것입니다.
오늘 해볼 것
덧붙이면, 이 연습의 효과는 목소리보다 말의 편안함에서 먼저 나타납니다. 호흡이 편해지면 말이 덜 막히고, 하려던 말이 바로 나옵니다. 발성 훈련인데 결과는 유창성으로 돌아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복식호흡을 배워야 하나요?
호흡이 아래에서 올라와야 하는 건 맞습니다. 다만 “배에 힘을 준다”와 “공기압을 끌어올려 내보낸다”는 다른 동작입니다. 배를 단단히 잡는 연습만 하면 오히려 긴장이 늡니다. 붙잡는 감각이 아니라 밀어 올려 내보내는 감각으로 접근하세요.
Q. 또박또박 발음하지 말라는 뜻인가요?
발음을 포기하라는 게 아니라 순서를 바꾸라는 것입니다. 흐름이 유지된 상태에서의 발음은 오히려 더 잘 들립니다. 실제로 연음으로 부드럽게 넘긴 말이, 음절마다 끊어 발음한 말보다 명료하게 전달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Q. 말에 진심이 안 실린다는 피드백을 자주 받습니다. 연기력 문제일까요?
감정을 더 넣으려고 애쓰는 방향은 대개 역효과가 납니다. 먼저 호흡이 문장 끝까지 끊기지 않는지부터 확인해보세요. 깊은 호흡이 실릴 통로가 열리면 같은 문장이 전혀 다르게 들립니다. 혼자 판단이 어려우면 녹음해서 문장 어디에서 소리가 얕아지는지 짚어보는 것부터 시작하시면 됩니다.
이러서라(ERUSEORA) 대표. 언어재활사(언어병리학 석사)·전 대구MBC 아나운서. 발음·발성·비유창성을 임상적으로 교정하며, 아이돌·성우·배우들이 찾는 스피치 코치로 3,000명 이상을 코칭했습니다. 저서 『하루 10분, 말막힘이 사라지는 이러서라의 발성 루틴』 『배우들이 배우는 시크릿 발음 비법서』.